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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황궁 아파트는 누구의 것인가! 공동체의 이름 아래 형성된 권력

by wh-movie 2025. 5. 7.

콘크리트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는 엄태화 감독이 연출하고,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이 출연한 재난 드라마입니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생존과 공동체, 소유의 개념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자 권력의 상징이 되어 갑니다. 이 영화는 "아파트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황궁 아파트, 생존과 배제의 공간이 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재난 이후 무너져버린 도시 서울 속 유일한 생존지인 ‘황궁 아파트’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생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아파트로 몰려들고, 이를 막아서는 주민들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박서준 배우가 연기한 ‘민성’은 주민의 일원으로서 갈등 속에 휘말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만, 점차 공동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아파트는 이제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생존이 허락된 공간으로 전환됩니다. 이 공간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은 ‘외부인’이 되고, 내부인은 점점 폐쇄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그들’이라는 경계를 강화하게 만들며, 집단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황궁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주는 동시에, 내부에서는 배제와 차별, 권력관계가 더욱 심화되는 틀이 됩니다.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영탁’은 이 아파트 공동체의 리더로 떠오르며, 아파트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들을 주도합니다. 그의 캐릭터는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점차 강압적으로 변화합니다. 처음에는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 권한은 점점 일방적인 통제력으로 바뀌게 됩니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명분 아래, 인간성은 희생되고 윤리는 흐려집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위기의 순간에 공동체가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배제하는지를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공동체의 이름 아래 형성된 권력

공동체는 원칙적으로 상호 신뢰와 협력에 기반합니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 이상적인 개념이 실제 상황에서는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 속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처음에는 공포 속에서 서로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외부인의 유입이 늘어나고, 자원의 부족이 눈앞에 다가오자 이들은 스스로 ‘주민증’을 기준으로 소속 여부를 판별하기 시작합니다.박보영 배우가 연기한 ‘명화’는 이 배제의 과정에서 가장 깊은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입니다. 명화는 간호사로서 타인을 돕는 데 익숙한 인물이지만, 생존이라는 조건 앞에서 도움과 자기보호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행동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자아내게 합니다.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영탁은 점차 주민들의 신뢰를 등에 업고 아파트 내부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는 회의를 주도하고,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며, 심지어는 내부 질서를 위한 규율을 설정합니다. 겉보기에는 질서 유지지만, 실상은 소수의 권력이 다수의 의견을 대체해가는 과정입니다. 권력은 언제나 명분을 앞세우며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힘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영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한편, 민성의 변화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그는 초반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묘사되지만, 상황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자 자신의 윤리와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단지 악인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선했지만 결국 가담하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관객의 자아를 비추도록 구성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질문을 끝없이 되뇌이게 만듭니다.

아파트는 누구의 것인가: 오늘날 사회를 비추는 거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주는 울림은 단지 허구의 재난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 한국 사회, 특히 도시의 아파트 문화와 그것이 가지는 계층적 상징을 매우 예리하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서, 부의 상징이자 사회적 지위의 척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황궁 아파트가 상징하는 바는 명백합니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짓고, 그 안에서 권리를 주장하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영화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합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은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아파트는 ‘희망의 상징’이자 ‘갈등의 진원지’가 됩니다. 이 이중성은 우리 사회 속 아파트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또한 영화는 ‘소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던집니다. 아파트는 법적으로는 특정 개인이나 주민의 소유일 수 있으나, 재난 상황에서는 공동체적 자산이자 공유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기여한 것에 대해 더 큰 권리를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발생합니다.이러한 상황은 단지 허구의 설정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 사회에서도 재개발, 부동산 분쟁, 입주자 회의 등에서 유사한 장면들을 목격해왔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런 현실을 극단적인 설정으로 확대해 보여주며,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유토피아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디스토피아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순한 재난영화가 아니라, 공간과 권력, 공동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사회적 비판극입니다. 아파트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담는 상징이며, 영화는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해 다시 묻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