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개봉한 영화 <살아있다>는 조일형 감독의 연출 아래 유아인과 박신혜가 주연을 맡은 한국형 좀비 생존 영화입니다. 기존 좀비물들이 외부로 탈출하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한 공간에 고립된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현실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 이후 완전히 고립된 서울 도심 속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맥락과도 맞물려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생존이라는 본능, 고립 속에서의 심리 변화, 그리고 연결에 대한 갈망까지, <살아있다>는 단순한 좀비영화를 넘어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묻는 작품입니다.
도심 속 고립, 혼자가 된다는 공포
<살아있다>의 가장 큰 특징은 광활한 외부로의 탈출이 아닌, 서울 아파트 단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오준우는 유아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로, 1인 가구 청년입니다. 그가 머무는 아파트는 좀비들이 점령한 바깥세상과는 철저히 단절된 안전지대이자 감옥입니다. 영화는 오준우가 점점 주변과의 연락이 끊기고 식량도 바닥나며 생존의 한계에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고립이라는 감정이 공포보다도 더 무섭게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초반부, 오준우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지고, 휴대폰과 TV를 통해 외부 소식을 확인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기는 끊기고, 인터넷은 끊기며, 그는 점점 세상에서 잊혀지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영화는 이 ‘단절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물리적인 생존보다도 ‘정신적인 붕괴’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유아인 배우는 외로움, 두려움, 분노, 체념 등 복합적인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냄으로써, 관객이 직접 그의 심리를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이러한 고립은 팬데믹 초기 우리가 겪었던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인간은 얼마나 쉽게 무력해지는지를 이 영화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오준우는 단순히 좀비와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 고립과 싸우는 인간이며, 그 과정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살아있다의 공간 연출과 인물 구조
<살아있다>는 공간의 활용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아파트 내부에서 펼쳐지며, 외부는 창밖 풍경이나 베란다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한된 시야는 관객에게도 같은 고립감을 유도하며, 공간 자체가 하나의 심리적 장치로 기능하게 만듭니다. 좁은 복도, 낡은 부엌, 어두운 방 안은 폐쇄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며 오준우의 심리와 완벽하게 맞물립니다.박신혜 배우가 연기한 김유빈 캐릭터는 영화 중반 이후 등장하며 이야기에 전환점을 가져옵니다. 김유빈은 맞은편 아파트에서 홀로 생존 중이던 또 다른 생존자입니다. 그녀는 오준우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냉철한 인물로, 극단적인 공포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습니다. 두 인물이 만나게 되면서, 영화는 생존이 단순히 개인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결국 연결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리를 두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전달합니다.두 사람은 창문 너머로 소통을 시도하고, 드론과 밧줄을 이용해 물자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아갑니다. 이는 단절된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인간 본성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특히 김유빈의 존재는 오준우의 심리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 이상 자신만의 생존이 아닌,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오준우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고립과 단절
<살아있다>는 전통적인 좀비 영화와는 달리, 좀비 자체보다도 ‘고립 상태의 인간 심리’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공포의 도구이자 배경이며, 주인공을 외부와 단절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설명되지 않는 감염 경로, 조직적 대응이 보이지 않는 사회 시스템 등은 모두 현실과 절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영화가 설명을 최소화한 것도 관객이 직접 그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출적 장치입니다.실제로 2020년 팬데믹 초기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며, K-좀비 장르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1인 가구, 고립된 도시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살아있다>는 현실감 넘치는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좀비는 눈앞에 없지만, 외부와의 단절, 사회적 고립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공포였기 때문입니다.결국 영화는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살아있는가? 아니면 단절된 아파트 안에서 단지 생존만을 이어가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유아인과 박신혜, 두 배우는 이 철학적 질문을 감정선으로 잘 전달해냈으며, 영화의 여운을 깊게 만들어줍니다.<살아있다>는 좀비 영화의 외형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개인의 심리 변화’와 ‘연결의 본질’을 다룬 생존 드라마입니다. 도심 아파트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공포를 느끼게 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연결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생존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팬데믹을 경험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옵니다.